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경계측량



나에게 땅을 판 분이 올 봄에 땅의 경작권을 타인에게 임대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고구마경작이 끝날 때까지는 내 땅이어도 내가 이용하지 못하니 기다려야 했다. 1015, 16일에 걸쳐 고구마 수확이 이루어졌고, 나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전으로 되어있는 지목을 대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도로를 내야 하는데 현재는 맹지상태이기 때문이다. 도로를 내고, 농지를 대지로 전용하기 위해서는 인접한 토지와의 명확한 경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땅을 침범하면서 도로나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 )*지목(地目; 사용 목적에 따라 토지를 구분하여 표시하는 명칭)*대지(垈地; 집을 지을 수 있는 땅)*맹지(盲地; 도로를 통해 들어갈 수 없는 땅)*농지전용(農地轉用; 농지를 농업 생산이나 농지 개량 이외의 목적에 돌려쓰는 일)
 
측량은 [한국국토정보공사]에 의뢰를 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적당한 날짜를 잡는다. 그 날짜에 맞춰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 측량의 결과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웃하고 있는 땅의 주인이 같이 나와 있어야 뒤탈이 없다.
 
측량이 끝나면 현재 전()으로 되어 있는 농지의 일부를 도로로 전용하는 허가를 관공서에 신청해야 한다.
그 허가가 난 다음에는 현재 전()으로 되어 있는 농지의 어느 부분, 어느 정도 넓이를 대지(垈地)로 전용(轉用)할 것인가를 건축설계사님과 상의하여 결정한 후에 관공서에 신청하여야 한다.
 
()이 대지(垈地)로 전환이 되면 집 짓는 공사를 시작할 수가 있다.
인허가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에 설계를 진행해야 한다. 설계도면과 시방서가 손에 쥐어지면 그 도면과 시방서대로 공사를 진행해 줄 시공사를 찾아야 한다.
건설업체를 수소문하여 도면과 시방서를 바탕으로 견적을 뽑아달라고 요청하고, 몇 군데의 견적을 받아 본 뒤에 합리적인 곳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시방서(示方書 : specifications); 공사의 진행을 위해 공사의 순서를 적은 문서; 시방서는 건물을 설계하거나 제품을 제조할 시 도면상에서 나타낼 수 없는 세부 사항을 명시한 문서를 말한다. 시방서는 사양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방서에는 재료의 재질, 품질, 치수, 시공 방법, 공법 등을 표시하게 된다. 시방서는 도면과 함께 설계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시공사(施工社); 토목이나 건축 등에 관한 일을 시행하는 회사.
 
원칙은 이러하지만 소규모 공사에서는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많은 비용을 들인 도심의 전원주택은 모르겠지만 시골의 전원주택은 저렴한 비용의 대가를 낯선 방식으로 치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10년쯤 늙는다는 사람도 있다
설계는 준공검사를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되고, 시방서는 상세하지도 않지만 지켜지지도 않으며 형편에 맞춰 수시로 고쳐진다. 시공사나 건축주의 다양한 상황과 형편에 따라 공사는 설계도나 시방서대로 행해지지 않으며, 그에 따라 원래 추산했던 비용도 변하게 되는데 줄어드는 법은 거의 없다
시공사에서 쭉 해오던 방식의 공사가 강요되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이 없는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항변을 하려야 할 방법이 별로 없다. 원래대로 하면 안 좋아서, 돈도 많이 들어서, 시간도 많이 들어서, 나중에 유지보수 하는데 공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름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던 많은 시도들은 취소되거나 축소되거나 예상했던 만큼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큰 실망 속에서 이 난국에서 최대한 빨리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자연마저도 등을 돌리게 되는 사태가 생기면 건축주가 입는 내상은 수년의 치료를 요하는 지경이 된다. 예상치 못한 장마나 추위나 무더위는 일의 진행을 더디게 하고 완성도를 떨어뜨리게 되는데 이는 곧장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나는 보이거나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 이 길의 시작점에서 몇몇 동지들이 앞서 간 길을 쫒아 두려운 마음을 품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모든 것이 내게 달려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내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나다. 그리고 이번 귀촌 결정은 내 삶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이 지금 지으려는 집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매 순간이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인지하고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 행동해야 한다



2017년 8월 4일 금요일

바캉스

여름휴가 시즌이 그 절정을 지나고 있다. 숱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 안도하는 대가로 자신의 피와 같은 돈을 쏟아 붓는 그런 때이다. 자신이 가는 길이 자신에게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행을 한다 해도 행복한 길로 바뀔 수 없음이 당연한 것임에도 애써 무시하며 행복해지리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
 
물을 좋아하고, 번잡함을 싫어하는 탓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닿는 대로 물이 있고 한적한 곳으로의 여행을 찾았었는데, 해외여행을 자주 가게 되었다. 쇼핑을 강요당하는 그런 여행이 싫어서 찾게 되었던 클럽메드로의 여행이 마음에 들었다.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아이들을 맡길 수 있고, 조용한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음주와 독서와 수영과 수면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두어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녀온 경력을 갖게 되었는데, 그 사이 적지 않은 만남을 통하여 외국인들의 여행풍속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과는 달리, 프랑스인이나 러시아인이나 호주인과 미국인 혹은 이탈리아인들은 시간적으로 무척 여유 있는 여행을 한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나눠 보면 짧으면 일주일이고, 길면 3주씩 하나의 리조트에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해는 78초 극한의 기간을 그냥 집에서 보낸다. 바캉스여행에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으며, 행복한 여름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더위를 흘려보낸다. 다행스럽다. 다행스러운 까닭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숱한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는 까닭과 같을 것이다. 다른 이유로 다행스러워 지기를 바란다


2017년 7월 19일 수요일

어떤 집을 지을까?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집 주변에서 집을 지으면 모래장난이며 벽돌쌓기 등의 놀이를 하느라 공사장 주변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요즘 옛 집을 허무는 공사판 근처를 지나다 보면 보게 되는 것은 블록 한 개로 만들어진 벽과 그 벽이 만드는 방이다. 블록을 쌓아 올리고 시멘트 미장으로 마무리 짓고 벽지를 바르면 방이 되고 그것이 집짓는 일이었던 때가 있었다. 단열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이였던 것 같다.


귀촌을 맘에 두면서 관심을 가졌던 건축. 기억속의 그런 건축과는 차원이 달라져있었다. 독일의 패시브하우스는 벽 두께가 최소 35센치미터 이상이라고 했다. 단열재도 여러 가지 건축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창호였다. 공기층을 만들기 위해 유리 두세 장을 일정한 간격으로 겹쳐놓을 뿐만 아니라 열교를 차단하기 위해 프레임을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열전도율이 엄청 높은 알루미늄 프레임에 바람이 송송 통하는 허접한 구조의 샤시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애당초 굳게 마음먹고 있었던 철근콘크리트 골조의 주택에 대한 생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가성비가 좋은 건축자재들과 공법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주 고급주택에만 쓰이던 공법들이 이제는 일상화되었다. 전원주택 붐을 타고 인터넷을 통하여 좋은 정보들이 금세 알려지고 시공되어지고 있어서 이 업계에 오래 몸담았던 전문가들도 따라가지 못할 지경인 듯싶다. 물론 이러한 물정에 밝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평당 얼마씩 이라고 매겨지는 방식으로 건축을 하고 있지만 머잖아 이런 방식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생각해 놓은 컨셉에 맞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인연을 만나야 할 것이고 운도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나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도 고민이 깊어간다.

어떤 집을 지을까?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호접란


무더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농업인력포털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교육을 듣고 있다. 오늘 듣고 있는 내용은 [ Start up! 청년 농업 스타 되기! ]라는 과정으로 20시간짜리 교육이다.

딸기로 귀농에 성공한 사람, 포도로 귀농에 성공한 사람 등등 열대여섯 가지의 성공사례들이 나온다. 방금 시청한 부분은 화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호접란을 육묘하여 나름 잘 나가는 여성 창농(創農)인이셨다. 이 자료가 만들어진 것을 전후 문맥과 자료를 통해 추산해보니 2011년경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작년 김영란법 시행 이후로 우리나라 화훼산업은 멸절되었다고 본다. 그 사장님도 직격탄을 맞고 망했을 것이다. 화훼농가 살리자고 김영란법을 무를 수는 없는 것일 터이니 앞으로의 비전도 없다고 봐야 한다. 열심히 노력했고, 한 때 승승장구 했지만 그는 지금 실패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렇듯 어떤 일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시대와 사회와 정책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휘두른다.

강화도 출신의 한 엔지니어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를 제법 잘 해서 서울대를 들어갔고, 부모님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논밭을 팔아 학비를 댔다. 그러나 엔지니어를 우대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희소가치조차 떨어지자 그의 삶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의 친구 하나는 공부를 못해서 일찌감치 물려받은 땅에 농사를 짓고 있었고, 세월이 지나 땅값이 수백 배 올라서 재벌에 견줄만한 재력을 갖고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다.

나는 땅도 구입했고, 건축을 할 예정이며, 호구지책도 마련하는 등 본격적인 귀촌을 실행하고 있다. 10년 혹은 20년 후에 나는 안도하고 있을까? 아니면 절망하고 있을까? 자못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귀농교육

온라인 귀농교육

농업인력포털
http://www.agried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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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귀농교육

농업인력포털
http://www.agriedu.net

귀농귀촌종합센터
http://www.returnfarm.com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 (지역에 따라 주관부서가 다를 수 있음)

각 지역
귀농귀촌지원센터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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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새로운 제도와 기관들이 생긴다. 열심히 검색하고 거리낌 없이 전화하는 습관이 들어야 한다. 정책자금 지원이 필요치 않다면 굳이 100시간 교육을 받을 필요 없다. 하지만 교육 중에는 시골생활에 필요한 기술 교육이 제법 들어 있고, 텃밭이라도 가꾸려면 알아두어야 지식들도 얻을만한 교육도 있다.

나는 상상한다.



하루 종일 지루한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며 대지를 적시고 있다. 천둥번개를 동반하며 요란하게 내리치던 요즈음의 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옷가지며 이불이 습기를 머금어 상쾌하지 못하다. 내년 이맘쯤에는 난로에 불을 지펴 습기를 날려버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짓기 시작하는 시기는 봄과 가을인데, 장마와 혹한을 피할 수 있는 시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나도 내년 봄에 건축을 할 생각이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눈을 감고 상상에 잠긴다. 나의 집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수년째 해오는 일이다. 그런 상상 속에서 나는 살아온 세월동안 길들여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의레껏보고 살아온 모습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말이다. 소파와 TV로 채워진 거실, 변기와 욕조로 인해 비좁은 화장실, 의미 없이 쪼개진 공간들 등등. 우리는 불편함 없이 살았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유가 처음 주어지면 어색해하지만 한 번이라도 자유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 보았고, TV나 인터넷을 통하여 간접경험을 했다. 그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 생겨난 갈망이 있다. 그것을 실현시켜야 할 때가 왔다.


2017년 7월 16일 일요일

농지취득자격증명

농지를 매입할 자격을 국가기관이 허락한다는 증표이다.

농지 매매계약서를 가지고 해당 면사무소를 찾아간다.
[ 면사무소 - 산업계 ]라는 곳을 찾아가서 문의하면, 신청서를 준다. 도움을 받아 작성하면 4일 이내에 발급이 된다.

농지를 샀는데 1년 이상 농사를 안 짓는다면, 벌칙을 받게 된다.
농지강제처분명령
이행강제금부과
하다못해 나무라도 심어두어야 한다.

농지를 사서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려면 이 서류가 있어야 한다.

농부에게 필요한 생활기술 학교

정부에서는 귀농을 지원하기 위해 집을 짓거나 농업기반시설을 마련할 때 자금을 빌려준다. 단 국가가 인정하는 교육기관에서 10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조건에 포함되어 있다. 온라인교육으로 40시간을 획득할 수 있고, 나머지 60시간은 오프라인교육으로 충당해야 한다.

http://www.returnfarm.com/views/cms/rtf/m3/n31.jsp

오프라인 교육을 이곳저곳에서 알아보던 중에 [ 농부에게 필요한 생활기술 학교 ]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서 접수를 하고 4박5일간의 교육을 받고 왔다.

이 교육은 두 단체에서 주관한다.
사단법인)전국귀농운동본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20여명의 교육생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했다. 귀농귀촌 생활에서 필요한 잡다한 기술들을 가르쳐주었는데 시간제약상 기초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그러한 기술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모호함을 일소시켜주는 값진 교육이었다.


이번 교육에 참가한 20여명의 교육생들 중 일부는 이미 귀농을 하였는데, 젊은 사람들이 40%는 되어 보였다. 여성분들도 40%였었고, 귀농보다는 귀촌에 뜻이 있는 사람은 약 20%정도 되는 듯싶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교육은 때론 저녁 10시까지 이어졌다. 실습을 마무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실습장을 늦게까지 열어두는 것이다. 날은 덥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해서 이곳저곳이 아파오고 지쳐왔지만 배우는 기쁨이 더 컸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오프라인 교육이 제법 여러 가지가 있다. 잘 선택해서 계속 교육받아야 하겠다.

땅을 구하다.


지난 몇 년간 귀촌생활을 할 만한 땅을 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했었다. 너무 가까이 묘지가 없어야 하고, 고압선이 없어야 하고, 축사가 없어야 하는 등 몇 가지 굵직한 조건만 충족해주기를 바랬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골에선 저 조건들이 아주 까다로운 조건들이였던 것이다.

50세 전에 귀촌을 하겠다는 나의 열망과 그간의 노력이 보답을 받은 것일까? 맘에 드는 땅이 발견되었고, 매수를 하게 되었다. 물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을 리 없지만 충분히 용인할만한 수준이다.

20년간 광주에서 살았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느라 익산에서 10년을 머물렀고, 의왕에서 20년 동안 가정을 꾸리고 생업에 종사했다. 이제 이곳 강진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고, 그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내년 봄에 새 집을 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비슷한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의 기록들이 무척 도움이 된다. 내가 가는 길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에 기록으로 충실히 남기려 한다.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전원주택을 크게 짓자

H빔 공법으로 지은 카페, 주방 화장실 객장 세 부분으로 되어 있음.

귀농귀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본 사람들은 시골에 큰 집을 짓지 말라는 조언을 여기저기서 보게 된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 이유로 내세워진다.

1. 돈 문제 :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정책적 세제혜택을 받기 어렵고, 나중에 팔기가 어렵다.
2. 유지관리에 시간과 노력과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나는 큰 집을 지을 것이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씩 따져 나가보도록 하자.

집의 입구인 현관이 좁을 경우에는 신발과 각종 잡동사니가 하나씩 쌓여 가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땅값 비싼 도시에서나 그렇게 사는 것이다.
현관을 넓게 잡고, 신발장도 넓고 크게 만들고, 필요하다면 수도까지 설치해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장화를 세척하거나 손발을 씻고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모자나 비옷이나 우산을 둘만한 공간도 현관에 들어가야 하니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침실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침실에 텔레비전을 놓거나 책상을 놓거나 티테이블을 놓는 것은 한정된 공간을 여러 가족이 나눠 사용하는 도시에서나 할 법한 일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거실이라는 공간을 부부가 오롯이 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침실을 작은 거실처럼 만든단 말인가! 침실을 작게 만들고 전열교환기를 설치하여 환기에 신경 쓰고, 에어컨과 난방 보일러배관에 신경을 쓰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저렴한 비용으로 쾌적한 수면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전원주택에서는 거실이라는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도시 생활에서 사무실과 같은 개념의 공간이다.

예전 집들은 자재도 없었고, 기술도 없었고, 유지관리 할 만한 비용이나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동일한 공간에 이불을 펴면 침실, 밥상을 놓으면 식당, 책상을 놓으면 공부방, 차탁을 놓으면 응접실이 되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과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입식생활을 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허리와 무릎, 특히 무릎이 망가져서 고생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닥 생활과 밭농사이다. 모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거나 쭈그려 앉아 일을 하는 것 때문이다. 현관까지만 흙 뭍은 신발이 들어올 수 있게 하고 그 안쪽으로는 슬리퍼나 덧버선을 신고 생활해야 한다.

ㄱ 자로 꺾어진 크고 푹신한 소파는 허리를 망가뜨리고 정신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가구이므로 들여 놓지 않는 것이 좋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는 심플하게 만들어진 1인용 안락의자나 흔들의자를 한쪽에 한두 개 두면 된다.

큰 거실에서의 생활은 마치 큰 사무실에서의 생활과 비슷하게 해 나가면 된다. 책장이나 장식장 등을 파티션으로 활용하여 부서 간에 구역을 나누듯이 공간을 분할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공간을 나눠 수납공간을 만들되 대형마트에서 짐을 보관하듯 수평과 수직공간을 모두 활용하는 식으로 수납하고 목록을 만들어 사용하면 아무리 많은 짐이라도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가 된다.

높은 천장과 넓은 창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냉난방의 비효율성으로 말미암아 전원주택 건축에서 배제되어야 할 요소로 여겨졌다. 이 역시 최근 몇 년간의 눈부실 기술 발달로 말미암아 옛이야기가 되었다. 단열재와 복층유리 및 단열시공법의 개선으로 냉난방의 비효율성은 극도로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기술들이 이제는 일상적인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베란다를 확장한 15층의 아파트에서 거실을 바깥으로부터 차단하고 있는 복층유리 시스템창호를 보면 그 단열성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무엇보다도 거실에서의 생활이 마치 야외에서의 생활에서 겉옷을 한 겹 벗은 모습의 생활이 된다면 난방문제는 한결 손쉬워진다. 바닥 생활을 해야 해서 거실까지 바닥 난방용 보일러를 돌리고, 높은 천정의 차가워진 공기를 덥히기 위해서 라디에이터나 화목난로 등을 써야 한다면 비용과 노력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겨울에는 단열성능이 좋은 큰 창을 통해 햇볕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여름에는 접이식 어닝을 이용하여야 한다. 각자의 환경을 잘 살펴서 여름에는 천장선풍기와 커다란 팬을 가진 대형선풍기와를 활용하고, 겨울에는 화목난로나 벽난로를 활용하면 넓은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냉난방의 부담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널찍하고 높은 공간을 가진 거실에서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의자에 앉아서 마늘도 까고, 텔레비전도 보고, 차도 마시고, 작업도 해야 한다. 여차하면 간이침대 여러 대를 놓아서 손님을 치르기로 하고, 스크린을 설치하여 영화도 볼 수 있고, 이웃공동체의 회의나 작업도 가능할 정도의 넓은 거실을 가져야 한다.

화장실의 크기도 커야 한다. 사실 화장실은 물을 사용하는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규정하여야 한다. 욕조와 세면대와 샤워기뿐만 아니라 세탁기와 건조기도 두어야 한다. 외발구르마나 휠체어나 가 들어갈 수 있을만한 입구와 경사로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김장 조차도 화장실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따뜻한 물은 여름에는 전기온수기를 주로 사용해야 하고, 가을 겨울에는 전기온수기와 다른 난방용 보일러를 같이 활용해야 한다.

2중 3중의 방충망을 활용하여 해충의 침입을 차단하고, 업소용 청소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재질로 바닥마감을 하면 청소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다.

침실에서는 잠만 자고, 그 이외의 모든 활동은 넓은 거실과 넓은 화장실에서 이루어지는 집을 만들어보자. 편리하고 건강에 좋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 아닌가.


2017년 6월 27일 화요일

귀경

한 달여 떠나 있던 집에 다녀왔다. 나주역까지 가서 차를 주차하고 KTX를 타고 올라갔는데, 광명역까지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공간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감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탈 없이 주변의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교환할 때가 된 프린터 청색토너를 갈아주고, 지인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소비문화에 의하여 길들여져 사육되고 있는 동료 인간들의 모습을 코스트코에서 보았으며, 그간 못 먹었던 술도 넉넉히 먹고 돌아왔다.
 
한시적인 시골생활을, 나야 내가 좋아서 한다지만, 안사람은 졸지에 남편 없이 두 아들을 관리해가며 집을 지켜야 했다. 잘 버텨주고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아직도 두 달이나 남았다.
 
왜 내 눈에는 도시생활의 거의 모든 것들이 마땅찮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불평등, 단절, 무관심, 이기심, 소외, 불신, 기만, 자아도취, 자의식상실, 자기합리화, 불안, 낭비 등과 같은 단어들이 도시와 도시사람들과 도시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떠올랐다. 제법 잘 나가던 나의 도시생활을 설명하려면 저 혐오스러운 단어들이 얼마나 쓰여 져야 할까? 나의 기행은 시골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도시가 싫어져서 시작된 듯싶다.
 
이것도 하나의 과정일 것인데, 끝자락 즈음에서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집 창문을 열고 세 장의 사진을 찍어 편집 했다. 청계산위로 아침해가 솟는다.

 

2017년 6월 21일 수요일

모기

시골생활이 꺼려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벌레는 그 중에서 몇 위 안에 들어간다. 벌레 중에서도 모기는 내게도 정말 끔찍하게 싫다. “애앵~~~”하는 소리와 함께 몸 주위를 돌며, 빈틈을 노리는 모기. 

파리는 파리채 하나만 있어도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한데, 모기는 그렇게 되지 않고, 약을 뿌리거나, 모기향을 피우거나 해야 하는데 나는 모기약과 모기향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결국 모기를 손으로 때려잡거나 모기장 속으로 도망가는 방법을 택한다. 

시골생활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그간 모기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숙소에 모기가 한 마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급기야 간밤에 자고 일어나니 손등 쪽에 한  방 물린 자국이 있었다. 숙소 입구에 자석을 이용해서 편하게 여닫을 수 있는 모기장문을 설치한 덕분에 그간 안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저녁을 먹고 숙소의 불을 끄고, 모니터 앞에 앉아서 컴 작업을 했다. 여느 때와는 다른 목적이 한 가지 있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모기를 잡는 것이었다. 모니터의 불빛이 모기를 유혹하고, 모기가 가시권에 들어오면 손바닥을 날려 모기를 잡고자 했다. 



두 마리. 엄청난 성과다. 두 번째 모기를 잡고, 약 30여분 째 모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늘 저녁은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침대와 기본적인 생활공간을 감쌀 수 있는 사각형의 대형 모기장을 이미 사 두었다. 좀 지내보다가 손바닥 공격으로 감당이 안 될 지경이 되면 사용해야 하리라. 


스프레이식으로 뿌리는 모기약은 정말 쓰지 말아야 하는 독약이라고 생각한다. 몸에 뿌리는 스프레이 모기 차단제도 맘에 내키지 않는다. 모기향은 불을 붙여 쓰는 것이든 전자식이든 몸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집에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관리해야 하겠고, 자는 동안 공격당하지 않도록 모기장을 쓰는 것이 좋겠다. 

*오늘은 ‘난민의 날’이라고 한다. 난민 문제가 어서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오늘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 ‘하지(夏至)’다.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화덕의 귀환

땅이 구해지면 집을 지어야 한다. 수년째 시간이 되는대로 다양한 집의 모양과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공부를 해 오고 있다. 건축에 있어서 난방은 중요한 부분이다. 해남으로의 귀촌을 생각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도 이곳이 따뜻하다는 점이였다.
 
요 며칠 동안 읽은 화덕의 귀환이라는 책에서 난방과 관련되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건축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능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집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잔디밭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유지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도 많고, 넓은 데크를 만들어 놓고도 유지보수가 안되어 활용을 잘 못하는 사람도 많고,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잡풀 관리를 못하여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멋진 집을 가지고도 난방비 때문에 춥게 지내는 사람도 많다.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새로운 소재들도 다양하게 개발되었다. 창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고, 관리하는 기계들도 다양하고 편리해졌다. IoT 기술의 발전으로 더더욱 좋아질 것이다. 잘 준비하여 편리하고 효율적인 멋진 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거친 삶

토요일 저녁에 본방을 하고, 일요일 아침에 재방을 하는 KBS1방송의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을 나는 즐겨 본다. 오늘 아침 방송 내용 중에는 홍콩의 가사도우미 이야기가 나왔다. 30만 명에 달하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홍콩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이 마치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일을 통해 번 돈을 고향의 가족에게 보낸다고 한다.

EBS의 ‘세계테마기행’도 즐겨보는 프로그램인데, 일요일 저녁에는 주중에 했던 다섯 편의 내용을 연달아 보여주기에 시간이 되면 꼭 보곤 한다. 이번 주에는 엄홍길씨가 히말라야의 여러 마을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방송 내용 중에 나오는 짐꾼(쉐르파 sherpa)의 험난한 삶은 이전에 보았던 다른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익히 보았던 것이지만 마음에 불편함을 준다. 그들은 그런 힘든 일을 하는 이유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환경에서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버거운 삶을 버텨나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잠깐 동안의 행복과 긴 고통. 이 역시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얼마나 먼 미래까지 그런 모습들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야 할까 생각해본다. 생각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대답은 이 평화로운 일요일 저녁을 절망으로 물들인다. ‘영원히!’


2017년 6월 16일 금요일

문명의 이기(利器)

여기 내려와 생활하면서 세제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담았던 접시는 세제를 쓰지 않고 닦아 사용하기가 어렵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일주일여를 살았었지만 많이 불편했다. 우리는 잘 짜여진 문명이라는 이름의 그물 속에서만 자유롭다. 과거의 사람들은 문명의 다른 부분에 이토록 속박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문명의 많은 혜택도 없었긴 하지만 좀 더 자유로웠다고나 할까?

문명을 뒤흔들만한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고통은 예전의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며칠 전에 서울과 경기에서 20분간 정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겨우 20분이였다.

‘미니멀리즘’, ‘단순하게 살기’ 등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의 것들을 향유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우리의 삶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가진 사람들에겐 가지고 있는 것들 거의 모두가 꼭 필요한 것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여겨질 것이기에 의식적으로 가지지 않은 삶의 방식을 추구해 보는 것이 좀 더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기에 좀 부족하고 불편한 생활을 의도적으로 겪어보는 것은 현재의 삶에 의외의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좀 더 장기적으로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해 얻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여 무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얻기 위해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요소들을 너무도 많이 낭비하고 있다. 인생의 요소들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문명만을 누리도록 해야겠다.

며칠간 수도꼭지에서 물뿌리개를 채워 텃밭에 물을 주었다. 수돗가에서 텃밭까지 십 수번 왕복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운동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 읍에 나가서 호스와 노즐을 사왔다. 이제는 가만히 서서 노즐만 좌우로 흔들고 있다. 며칠 후에는 이동식 스프링클러를 사 올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타이머밸브일까? 아! 채소를 사 먹겠군. 그 다음은 채소를 배달 시켜 먹으려나? 설마 비타민 건강보조식품은 아니겠지?




2017년 6월 15일 목요일

해남의 도서관

화덕을 이용한 음식들을 일상에 곁들이면 삶이 풍성해질 듯하여, 화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책이 하나 검색이 되었는데 제법 내용이 많고, 책값도 비싸다. 한번쯤 해남의 도서관에 대하여 알아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단 도서관에서 책의 내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해남의 도서관 수준도 좀 알아볼 겸해서 말이다.


도서관이라 할 만한 곳은 두 군데이다.
‘해남 군립도서관’은 해남군청 옆에 있는 해남문화예술회관 4층에 있다. 찾고자 하는 ‘화덕의 귀환’이라는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검색해보니 없었다. 주문을 해줄 수 있다고 해서 제목과 저자 및 출판사에 대하여 구매요청서에 적었다. 직원들 모두 친절하고 환경이 좋아 보였다. 더울 때 시원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만한 곳이다. 하지만 군청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많이 번잡하다.



‘해남 공공도서관’은 2층으로 된 단정한 건물에 있고, 1층에 서관이 있어 책을 빌릴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듯 보였다. 주차하기가 너무 편하고 주변이 조용해서 이용하기 좋을 듯했다. 의외로 이곳에 그 책이 있었다. 회원가입을 하고 책을 빌렸다. 카드를 하나 만들어 주는데, 앞으로 전국의 모든 도서관에서 저 카드 하나로 책을 대여 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주로 사서 읽었는데, 너무 비싸거나 소장할 가치가 없는 책은 도서관 이용도 고려해 봐야 하겠다.






‘화덕의 귀환’은 숙소에 돌아와 대충 살펴보았는데 대단한 책이다. 우리나라의 난로나 화덕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화덕에 대하여 나와 있고, 특히 그림 설명이 잘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무척 편해 보였다. 앞으로 며칠간 탐독하게 될듯하다.


돼지고기 두 근 16,000원, 소고기 한 근 24,000원어치를 사 들고 왔다.
돼지고기는 고추장 양념을 해서 여섯 등분하여 냉동실에 얼린다. 먹고자 할 때 꺼내어 양파, 양배추, 깻잎 등등의 채소를 넣고 볶아주면 200g 1인분의 제육볶음이 될 것이다.



소고기는 국거리를 사왔다. 마늘과 고기를 참기름에 볶다가 국간장과 간장을 넣고 살짝 졸여서 식힌다. 넓은 통에 적당히 얇게 펴서 넣고 냉동실에 얼린다. 미역국이나 소고기무국 혹은 소고기죽을 끓일 때 적당량을 넣으면 깊은 맛을 낸다.



아울러 후식으로 먹으려고 떡과 보리건빵과 토마토를 사왔다. 살을 찌워야 하기에 어떻게든 탄수화물 섭취를 늘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는다. 설탕, 물엿, 액상과당, 올리고당, 과당 이런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맨 날 잡곡밥, 보리건빵, 달지 않은 떡 같은 것만 먹으니 체중이 늘지 않는다. 그런 것이라도 많이 먹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




오늘은 오랜만에 고기반찬이 올라왔으니 술을 한 잔 하기로 하였다. 후식으로 블루베리를 먹는다. 너무 빨리 익어가서 따 먹는 것이 반이고 땅에 떨어지는 것이 반이다.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부모님과 여행

어머니 아버지를 모셔서 해남을 중심으로 여행을 시켜드렸다. 2박3일 일정을 진행 하였다.

목포역 - 달마산 미황사 - 두륜산 대흥사 - 가우도 출렁다리 - 완도 타워 - 다산초당 - 강진 석문공원 - 영암 월출산 천황사 - 나주역

완도 명사십리가 추가되었고, 석문공원과 월출산 천황사가 빠진 2박 3일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오후 3시 20분에 목포에 도착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해남으로 향했다. 해남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영암을 관통하는 길과 남쪽으로 진도를 스쳐 지나가는 길이다.

영암을 관통하여 강진에서 내려간다.

진도 쪽으로 내려갔다가 동쪽으로 향한다.
몇 가지 장점 때문에 영암을 관통하는 길에서 약간 변화를 주어 해남으로 향했다.


이 길은 광활한 간척지를 지난다. 사진에서 보듯이 쭉 일자로 내달리는 길이 인상적이고, 중간에 활주로와 비행장도 있으며, 너른 평야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목포 역에서 한 시간 삼십분을 달려 달마산 미황사에 도착하였다. 원래 이곳에서의 일몰을 보려고 하였으나 일몰 예정시간이 오후 7시 30분이여서 저녁식사가 애매해지므로 식사 예약시간에 맞춰 해남 읍으로 돌아 나왔다. 미황사는 사찰 뒤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달마산의 기세가 자못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바위들이 병풍처럼 절을 호위하고 있다.

이쪽으로 해가 진다. 낙조가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영일만 소주방식당'은 삼치회를 처음 먹으면서 갔었던 집이다. 너무너무 맛나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미리 전화를 걸어 요즘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삼치회는 가을 겨울에 먹는 것이고, 요즘 같은 오뉴월에는 병어가 좋다고 하여 병어조림을 주문해 놓았다.
제 철의 싱싱한 병어로 끓인 조림은 정말 맛이 좋았다. 남김없이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흡족하였다.



숙소인 '유선관'에 모셔드리고 농장으로 돌아왔다가 새벽에 대흥사 산책을 위해 일찍 모시러 갔다.
대흥사는 큰 절이다. 새로운 건물이 자꾸 들어선다. 시멘트와 플라스틱이 많이 사용되는 신축 건물들은 웬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산책 후 부모님이 주무신 '유선관'의 방에서 맞이한 '유선관'의 아침밥상이다. 깔끔하고 맛이 좋으며, 밥상째 들고 들어오는 퍼포먼스에 흥겨워하셨다.



식사 후 농장에 들렀다. 새들이 군침을 삼키는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 가져 가실만큼 수확하시게 해 드렸다. 한 바가지를 수확하시고는 무척 좋아하신다. 친구가 출근길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친구를 맘에 들어 하신다.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가우도 출렁다리'로 가서 가우도를 한 바퀴 돌았다. 풀과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느긋한 산책을 즐겼다. "가우도가 이렇게 관광지가 된 것을 가우도 주민들 중 몇이나 좋아할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가우도에서 가까이 있는 마을 '사초리'는 개불과 낙지로 유명하다. 사초리 포구 바로 옆에 있는 '선창횟집'을 미리 검색을 통해 알아 두었다. 낙지요리를 먹기 위해서이다. 어머님은 낙지요리를 좋아하신다. 낚지 탕탕이와 초무침을 주문하였다. 탕탕이를 안주로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초무침을 밥 위에 얹어 김가루를 뿌린 뒤 비벼 먹었다. 별미라고 할만하다.





완도 읍에 있는 완도타워로 갔다. 이곳에서는 완도 주변의 거의 모든 섬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도까지도 볼 수 있다.


오후 4시에 입실할 수 있는 펜션이여서, 완도타워에서 휴식을 좀 취한 후에, 근처에 있는 완도중앙시장에 들러 몇 가지 건어물 쇼핑을 한 후에 시간에 맞춰 '완도 Lowa 펜션'으로 갔다. 짐을 풀고, 사장님께서 주신 목련차를 한 잔 마신 후에 명사십리로 바다를 보러 갔다. 명사십리의 모래는 정말 너무 곱다.



점심때 너무 잘 먹어서 저녁은 간단히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잤다. 아버지와는 자꾸 여러 면에서 부딪히게 된다. 별로 좋아하지 않고, 긍정하고 싶지도 않은 명언 아닌듯한 명언 한 귀절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옳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무렵에는 자신에 반대하는 아들을 하나 쯤 두게 마련이다. -찰스 워즈워드-
새벽 4시 45분에 부모님을 깨워 서둘러 펜션을 나섰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이다. 장보고가 터를 잡고 활동했던 청해진에 올라 일출을 보았다. 너무 환상적이었다. 일출을 많이 보지 못하셨다는 부모님께서 너무 감탄을 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완도 Lowa 펜션'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물 빠진 바닷가에서 갯고동을 발견하곤 열심히 주우시는 어머니.
올갱이나 고동을 병적으로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30분 가까이 기다려 드렸다.




'완도 Lowa 펜션'을 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침식사 제공이었다. 팍팍한 일정에 따로 아침 식사를 하러 움직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는데, 멋진 아침 식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며느리가 좋아할만한 아침 식사라며 말씀하셨지만 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어르신들은 이런 식사를 싫어하실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사장님 내외분께 인사하고 '다산초당으로 갔다.
아! 다산(茶山). 비운의 선비여. 뜻을 펴지 못했기에 뜻을 오래 남겼구나.

어머님은 쉬시고, 아버님은 열심히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신다. 
내려오는 길에 선생의 남긴 말씀들을 새긴 돌들이 있는 정원을 지나는데, 새겨진 글귀들의 목록이 철판에 인쇄되어 있었다. 엑기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원래 일정에 넣어 두었던 석문공원과 월출산 천황사는 취소하였다. 80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피로를 호소하셨기에 귀경을 위해 곧장 나주 역으로 향했다. 바다에서 잡은 갯고동이며, 농장에서 얻은 블루베리, 비파, 매실, 살구와 완도의 시장에서 구입한 멸치와 뒤포리까지 짐에 더해지니 내게 전해주신 된장과 몇몇 물품들을 뺐음에도 불구하고 올 때보다 짐이 두 배는 되었다.
모쪼록 몸살 안 나시길 바랄 뿐이다.

쉰이 다 된 아들이 안락함을 떨치고 변화를 모색하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으실 것이다. 그 불안함을 좀 잠재워 드리고자 계획한 여행이 무척 흡족하게 마무리 되었다. 나의 계획이 일시의 변덕이 아님을 알게 되셨을 것이고, 이모저모에 안도감도 들으셨을 것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