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6일 금요일

문명의 이기(利器)

여기 내려와 생활하면서 세제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담았던 접시는 세제를 쓰지 않고 닦아 사용하기가 어렵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일주일여를 살았었지만 많이 불편했다. 우리는 잘 짜여진 문명이라는 이름의 그물 속에서만 자유롭다. 과거의 사람들은 문명의 다른 부분에 이토록 속박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문명의 많은 혜택도 없었긴 하지만 좀 더 자유로웠다고나 할까?

문명을 뒤흔들만한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고통은 예전의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며칠 전에 서울과 경기에서 20분간 정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겨우 20분이였다.

‘미니멀리즘’, ‘단순하게 살기’ 등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의 것들을 향유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우리의 삶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가진 사람들에겐 가지고 있는 것들 거의 모두가 꼭 필요한 것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여겨질 것이기에 의식적으로 가지지 않은 삶의 방식을 추구해 보는 것이 좀 더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기에 좀 부족하고 불편한 생활을 의도적으로 겪어보는 것은 현재의 삶에 의외의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좀 더 장기적으로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해 얻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여 무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얻기 위해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요소들을 너무도 많이 낭비하고 있다. 인생의 요소들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문명만을 누리도록 해야겠다.

며칠간 수도꼭지에서 물뿌리개를 채워 텃밭에 물을 주었다. 수돗가에서 텃밭까지 십 수번 왕복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운동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 읍에 나가서 호스와 노즐을 사왔다. 이제는 가만히 서서 노즐만 좌우로 흔들고 있다. 며칠 후에는 이동식 스프링클러를 사 올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타이머밸브일까? 아! 채소를 사 먹겠군. 그 다음은 채소를 배달 시켜 먹으려나? 설마 비타민 건강보조식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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